50부작 대하드라마 미실 종방, 선덕여왕은 어디에??

이 드라마를 처음 보기 시작한 건 당연하게도 카리스마 좔좔 넘치던 고미실 여사 때문이었다. 원래부터 고현정은 우리 나라에서 아주 드물게 연기에 소위 기품이라는 것을 쉽게 실어버리는 연기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바로 관심을 가졌는데, 그 카리스마와 기품, 표독함을 적절히 조화시키며 50화까지 잘 이끌어냈다. 하지만 덕만의 얘기에 몰입하는 것 역시 어렵지 않았다. 어린 덕만은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이었으며, 그 바통을 이어받은 이요원은 어린 역과의 연결이 아주 자연스러웠을 뿐 아니라, 남자에서 여자로, 낭도에서 공주로 변해가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보여주었다. 이 당시에 대상은 공동 수상이 아니냐, 고현정이 저런 연기를 하고도 주연이 아닌 탓에 밀리면 어쩌냐는 반응이 아주 많았을 정도로 덕만 역시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고현정의 입체적인 연기에 비하면 이요원의 연기는 평면적으로 보인다. 좀 더 속내를 들여다보면 너무나 매력적일 수 밖에 없는 미실의 캐릭터와 단편적일 수 밖에 없는 덕만의 캐릭터이기도 하다. 이것에 대해서는 작가를 비판하고 싶지 않다. 이건 작가가 정한 태생으로부터의 숙명이다. 미실은 지배하는 캐릭터이고 덕만은 끌어안는 캐릭터이다. 미실이 백성을 하늘의 뜻을 조장하고, 귀족의 힘을 빌려 지배하려는 것을, 덕만은 백성에게 희망을 주고 나누어 주고자 그녀에게 대항해 왔다. 현실세계의 인물같은 미실에게 오색찬연한 매력을 부여하는 것은 쉽지만, 교과서적인 덕만에게는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난 지금까지는 괜찮았다고 생각했다. 미실과 덕만의 본성적이고 사상적인 대립은, 지금은 덕만이 미실에게 눌릴지라도 결국 이겨냄으로써 덕만의 치세가 펼쳐지는 정당성을 부여하고 비로소 드라마의 주제가 잘 펼쳐지리라고 봤다. 실제로 미실과 덕만관의 대립은 나름 팽팽한 맛이 있었다.

하.지.만
문제의 마지막 50부째....

덕만은 승리하지만 사실상 패배자다. 미실이 여길천에게 속함성으로 돌아가라 이르면서, 모든 것을 덕만에게 질 수 없기에 군대를 돌린다고 했지만, 그 순간 결과적으로는 덕만이 미실의 모든 것에 패배했다. 덕만은 미실과의 단독회담, 그리고 여길천의 군사가 퇴각함을 기다려주면서 결국 미실의 뜻을 모두 받아들이고 패배하는 것이다. 이제 비로소 작가를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미실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신라를 연모했기에 독차지하고자 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 생각은 미실의 정치 행태와 아주 잘 부합한다. 하지만 다시 곰곰히 생각해보자. 우리가 고미실의 연기력에 소름이 돋아 깜빡 넘어갔지만, 미실의 사상이 과연 위대한 정치가의 그것일까?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위대한 정치인들은 그러지 않을 위치에서조차 나라와 그에 대한 연모를 나누어 가졌다. 미실은 나라를 독차지하고자 하여 백성에게 거짓하늘의 뜻을 퍼뜨려 자기가 나라를 조종할 수 있게 하였고, 또한 편하게 나라를 독차지하고자 하여 귀족들의 힘을 적당히 키워주었다. 이것이 위대한 정치인들의 올바른 행태인가? 아니라 단언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고미실의 연기가 소름끼칠지 언정, 신국을 연모한다는 말에 일종의 역겨움마저 느꼈다.

그런데... 덕만이 거기에 넘어간다? OTL  비담에게는 진정한 왕의 모습을 보았다는 드립을 치며, 신국을 연모한 미실이 이길 수도 있는 내전을 스스로 마무리 지을 수 있도록 기다려주기 까지 한다. 덕만이 그랬으면 안 된다. 덕만이 절대 그래서는 안 되었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덕만이 반박해야 했었다. 당신은 잘못된 사랑을 했노라고, 그래서 지금 자기에게 결국 지게 되는 거라고, 나라에 대한 연모는 나눌 수 있다고, 나는 당신처럼 살지 않을 거라고. 그래서 미실은 마지막까지 품위는 잃지 않을지언정 덕만에게 패퇴하여 죽어야 했다. 이 드라마가 선덕여왕으로 남으려면 말이다.

미실의 연모에 눌리고 거기서 왕의 모습을 본 덕만은 진정한 시대의 후계자가 아니다. 미실의 시대를 막내린 것은 미실 스스로이다. 덕만은 그 미실의 시대를 끝내지도 못했고, 미실의 시대에 유령 속에서 살아가야 할 것이다.

결국 50부작 드라마 미실로써 이 드라마는 끝이 났다. 나머지 12부의 번외편은 재미는 있겠지만, 지금까지처럼 좋아할 것 같지는 않다.

by beatlain | 2009/11/12 13:42 | 映畵 | 트랙백 | 덧글(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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