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19일
여제의 위용
나는 연아에 관해서는 한없이 관대하고, 또한 한없이 까다롭다.
일개 팬이 건방지게 뭐 관대하니 까다롭니 하는게 웃기지만,
이럴 수 있는게 또 일반팬의 즐거운 권리이기도 하니... 흐흐
내가 연아에 관해서 관대하다면, 그것은 연아의 성적이 될 것이다. 설사 연아가 천재지변이라도 일어나 듯이 갑자기 실수를 연발하여 그녀의 이름값에 걸맞지 못한 성적을 올린다 한들, 난 다만 아쉬워할 뿐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연아게 관해서 한없이 가다롭다면, 그것은 연아의 연기에 대한 부분이 될 것이다. 난 그녀가 어떤 경기를 펼쳐주느냐에 관해서는 아주아주아주 기대가 크기 때문에, 내 성에 차지 않으면 투덜댈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주 이례적으로 한 번 연아에 관해 투덜대볼까 한다.
사실 이번 곡 선택은 조금 의아했다. 007 테마 음악은 너무너무 과하게 뻔한 노래였고, 거슈인의 피아노협주곡은 올림픽 시즌이 아니더라도 상당히 과감한 선택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작년 음악들이 올림픽 시즌에 딱 어울리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의아함 때문인지 더욱 궁금증을 불러 일으킨 것이 이번 주말을 통해 비로소 풀렸다.
쇼트를 봤을 때는 솔직히 말해서 연아가 허리에서 권총 튕길 때는 좀 심하게 경기를 일으키며 나의 변태성-_-을 느꼈지만, 전반적으로는 무덤덤했다.
"뭐야 이거... 죽무랑 다른 게 없잖아;;;"
사실 선수들이 할 수 있는 기술이라는 것 자체가 한정적이기 때문에, 커리어를 거듭할 수록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지겨워질 수도 있다. 상당히 많은 선수들이 창조성을 발휘하지 못한 채 최전성기 속에서조차 자기 복제를 거듭하곤 했다. 이런 면에서도 연아는 단연 최고였다. 아무래도 구체점제보다는 창조성 면에서 제약이 있는 신체점제에서조차도 그녀는 자기가 가진 기술 내에서 끊임없는 변주를 모색했고, 하나하나 프로그램에서의 개성이 뚜렷했다. 이는 코치 오서와 안무가 윌슨의 조력 속에서 찬란히 꽃을 피워왔고, 김연아가 단순히 강한 선수가 아닌, 위대한 선수의 반열에 올려 놓는 핵심 요인 중의 하나였다(고 나는 믿고 있다). 하지만 이번 007 프로그램은 그런 창조성을 느끼기는 힘들었다. 트리플 플립과 트리플 러츠의 위치가 바뀌었다는 것 외에, 많은 면에서 지난 시즌 쇼트프로그램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고, 우리가 흔히 생각할 수 있는 본드걸 이미지에서 그다지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록산느에서 보여주었던 순수함과 요염함, 명과 암의 공존, 박쥐에서의 흥겨움과 발랄함, 죽무에서의 카리스마같은 뚜렷한 색채가 확다가오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잠재력도 느껴지지 않는다.
이제부터는 칭찬을 좀 하자. 트리플 러츠 + 트리플 토룹은 완벽하다. 예전에도 뛴 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 시즌들어 시그내쳐 점프로 전환한 것인데 어쩜 저리 완벽하게 뛸 수 있을까? 트리플 플립은 컴비네이션으로도 그리 잘 뛰었는데, 단독으로 뛰니 여유로울 수 밖에. 하지만, 스텝 후 정리 동작없이 간결하게 뛰던 트리플 러츠가 보기엔 더 좋았다. 뭐... 성공률이란 문제가 있으니 올림픽 시즌에서의 이런 변화는 받아들일 수 밖에.. 스핀은 연아의 시즌 첫 경기들 중에서는 가장 훌륭한 것 같다. 스파이럴은 지난 시즌 첫 경기가 더 나았고.. 하지만 여유롭게 더블 악셀을 성공시키며 압도적인 성적! 이제 연아에게는 무엇보다도 거장의 관록이 느껴진다. 기술 하나하나 동작 하나하나가 여유 속에서 무게감 있게 펼쳐진다.
예전에 USO 결승에서 로저 페더러와 앤디 로딕의 경기에 어떤 분이 감상을 적으셨던 게 생각이 난다. '페더러는 아무말도 안하고 달려가면서 치고 하는데 로딕은 마치 인간이 있는 힘을 다 쓸라 하는것처럼 어우 어우 이러면서 치니깐.. 좀 안습;' 또 SI지에서는 각자의 전략에 대해서 이런 비교도 했다.
앤디 로딕 "Throw it all at him." "Make it a war."
로저 페더러 Breathe air, step on court, pick up ball, strike with racket.
연아와 다른 선수들의 차이가 딱 그거다. 연아는 최상의 실력으로 모든 걸 완벽하게 제어하는 가운데 펼쳐내니 가볍게 하면서도 최고의 완성도를 가지게 되지만, 다른 선수들은 그냥 자기 자신의 최대치를 무리하게 달성하려고 하니 온 힘을 다해 해보지만 실수가 속출하고 마는 것이다. 이 정도 레벨 차이가 되면 더 이상 경쟁이라 부를 수 없다.
007은 이쯤되면 올림픽 시즌 곡으로는 괜찮다고 밖에 평가할 수 없다. 이 프로그램에서 이 이상의 감흥을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이 무슨 신들린 연기가 나온다고 어마어마하게 큰 감동을 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안정적으로 또한 압도적으로 쇼트에서부터 다른 선수들을 짓밟고 가는데는 최고일 것이다.
프리에 이르러선 더더욱 경쟁이라 부를 수 없다. 꽤나 높은 점수의 점프 하나 접어주고도 경쟁이 안 된다. 이런 걸 컴페티션이라고 불러야 돼?ㅋㅋㅋ
이 프리 프로그램은 음...음...음... 방상아 해설 위원은 이렇게 세련된 프로그램은 본적이 없다고 하시던데, 동의한다. 개인적인 감상을 좀 블라블라해보자면, 음악도 그렇고, 안무도 그렇고 지나치게 로맨틱하다. 보통 그렇게 되면 감정 과잉으로 흘러넘치게 마련인데, 또 한 편으로 굉장히 모던하다. 연기가 정제된 정도가 보통이 아니다. 그러니 세련되게 느껴질 수 밖에!
연아는 적어도 여자 스케이터들 중에는 가장 모던한 스케이터였다. 연아처럼 현대적인 미적감각을 표출할 줄 아는 선수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아의 연기에서는 늘 아름다움 저 속내에 지독한 냉철함이 숨어 있다. 완벽한 자기 제어가 가져오는 냉철함이. 하지만, 연아는 냉철하지만 차갑지 않다. 그녀의 연기가 냉철함을 완전히 지배해버리므로. 그래 이쯤되면 궁극이다. 연아는 피겨의 궁극을 향해 달려가는 것만 같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에서 어느 정도 그 끝을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여하간 이 프리프로그램은 시간이 지날 수록 더 많은 사람들의 이해와 사랑을 받게될 것이다.
사실 아직도 작년 시즌 곡들이 올림픽 시즌에 더 잘 어울리는 것들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그 대단한 곡, 안무, 연기로 사상 최고득점으로 월드챔피언에 오르며 얻은 소득이 너무 많다.
중요한 것 두가지는
첫째, 그녀가 여자 싱글의 원탑으로 사실상 인정받은 것이다. 이번 대회의 점수가 그것을 증명한다. 원래 피겨에서는 보통 한 번 탑으로 제대로 인정을 받으면 심판을 비록한 관계자들의 아낌없는 존중을 받는다. 그녀가 내려오지도 않겠거니와, 그 누구도 김연아 가시는 길에 생채기조차 내지 못하리라...
둘째, 김연아가 얻은 자신감이다. 연아가 절대 마인드가 약한 선수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불안한 모습을 종종 보인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번 대회를 보니 월드 이후 얻은 자신감이 장난이 아니다. 앞서서 언급했지만 동작 하나하나에서 관록이 묻어나는 거장의 손길이 느껴지는데, 이는 작년까지는 느껴보지 못했던 것이다. 기술의 레벨의 변화가 없는 상태에서 이런 것이 느껴진다면 챔피언의 위용과 자신감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그러다보니 연기에서 완숙미까지 물씬 느껴진다.
이제 마인드마저 완벽해진 연아를 상대할 다른 선수들을 생각하니 좀 심하게 안습이다.
일개 팬이 건방지게 뭐 관대하니 까다롭니 하는게 웃기지만,
이럴 수 있는게 또 일반팬의 즐거운 권리이기도 하니... 흐흐
내가 연아에 관해서 관대하다면, 그것은 연아의 성적이 될 것이다. 설사 연아가 천재지변이라도 일어나 듯이 갑자기 실수를 연발하여 그녀의 이름값에 걸맞지 못한 성적을 올린다 한들, 난 다만 아쉬워할 뿐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연아게 관해서 한없이 가다롭다면, 그것은 연아의 연기에 대한 부분이 될 것이다. 난 그녀가 어떤 경기를 펼쳐주느냐에 관해서는 아주아주아주 기대가 크기 때문에, 내 성에 차지 않으면 투덜댈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주 이례적으로 한 번 연아에 관해 투덜대볼까 한다.
사실 이번 곡 선택은 조금 의아했다. 007 테마 음악은 너무너무 과하게 뻔한 노래였고, 거슈인의 피아노협주곡은 올림픽 시즌이 아니더라도 상당히 과감한 선택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작년 음악들이 올림픽 시즌에 딱 어울리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의아함 때문인지 더욱 궁금증을 불러 일으킨 것이 이번 주말을 통해 비로소 풀렸다.
쇼트를 봤을 때는 솔직히 말해서 연아가 허리에서 권총 튕길 때는 좀 심하게 경기를 일으키며 나의 변태성-_-을 느꼈지만, 전반적으로는 무덤덤했다.
"뭐야 이거... 죽무랑 다른 게 없잖아;;;"
사실 선수들이 할 수 있는 기술이라는 것 자체가 한정적이기 때문에, 커리어를 거듭할 수록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지겨워질 수도 있다. 상당히 많은 선수들이 창조성을 발휘하지 못한 채 최전성기 속에서조차 자기 복제를 거듭하곤 했다. 이런 면에서도 연아는 단연 최고였다. 아무래도 구체점제보다는 창조성 면에서 제약이 있는 신체점제에서조차도 그녀는 자기가 가진 기술 내에서 끊임없는 변주를 모색했고, 하나하나 프로그램에서의 개성이 뚜렷했다. 이는 코치 오서와 안무가 윌슨의 조력 속에서 찬란히 꽃을 피워왔고, 김연아가 단순히 강한 선수가 아닌, 위대한 선수의 반열에 올려 놓는 핵심 요인 중의 하나였다(고 나는 믿고 있다). 하지만 이번 007 프로그램은 그런 창조성을 느끼기는 힘들었다. 트리플 플립과 트리플 러츠의 위치가 바뀌었다는 것 외에, 많은 면에서 지난 시즌 쇼트프로그램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고, 우리가 흔히 생각할 수 있는 본드걸 이미지에서 그다지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록산느에서 보여주었던 순수함과 요염함, 명과 암의 공존, 박쥐에서의 흥겨움과 발랄함, 죽무에서의 카리스마같은 뚜렷한 색채가 확다가오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잠재력도 느껴지지 않는다.
이제부터는 칭찬을 좀 하자. 트리플 러츠 + 트리플 토룹은 완벽하다. 예전에도 뛴 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 시즌들어 시그내쳐 점프로 전환한 것인데 어쩜 저리 완벽하게 뛸 수 있을까? 트리플 플립은 컴비네이션으로도 그리 잘 뛰었는데, 단독으로 뛰니 여유로울 수 밖에. 하지만, 스텝 후 정리 동작없이 간결하게 뛰던 트리플 러츠가 보기엔 더 좋았다. 뭐... 성공률이란 문제가 있으니 올림픽 시즌에서의 이런 변화는 받아들일 수 밖에.. 스핀은 연아의 시즌 첫 경기들 중에서는 가장 훌륭한 것 같다. 스파이럴은 지난 시즌 첫 경기가 더 나았고.. 하지만 여유롭게 더블 악셀을 성공시키며 압도적인 성적! 이제 연아에게는 무엇보다도 거장의 관록이 느껴진다. 기술 하나하나 동작 하나하나가 여유 속에서 무게감 있게 펼쳐진다.
예전에 USO 결승에서 로저 페더러와 앤디 로딕의 경기에 어떤 분이 감상을 적으셨던 게 생각이 난다. '페더러는 아무말도 안하고 달려가면서 치고 하는데 로딕은 마치 인간이 있는 힘을 다 쓸라 하는것처럼 어우 어우 이러면서 치니깐.. 좀 안습;' 또 SI지에서는 각자의 전략에 대해서 이런 비교도 했다.
앤디 로딕 "Throw it all at him." "Make it a war."
로저 페더러 Breathe air, step on court, pick up ball, strike with racket.
연아와 다른 선수들의 차이가 딱 그거다. 연아는 최상의 실력으로 모든 걸 완벽하게 제어하는 가운데 펼쳐내니 가볍게 하면서도 최고의 완성도를 가지게 되지만, 다른 선수들은 그냥 자기 자신의 최대치를 무리하게 달성하려고 하니 온 힘을 다해 해보지만 실수가 속출하고 마는 것이다. 이 정도 레벨 차이가 되면 더 이상 경쟁이라 부를 수 없다.
007은 이쯤되면 올림픽 시즌 곡으로는 괜찮다고 밖에 평가할 수 없다. 이 프로그램에서 이 이상의 감흥을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이 무슨 신들린 연기가 나온다고 어마어마하게 큰 감동을 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안정적으로 또한 압도적으로 쇼트에서부터 다른 선수들을 짓밟고 가는데는 최고일 것이다.
프리에 이르러선 더더욱 경쟁이라 부를 수 없다. 꽤나 높은 점수의 점프 하나 접어주고도 경쟁이 안 된다. 이런 걸 컴페티션이라고 불러야 돼?ㅋㅋㅋ
이 프리 프로그램은 음...음...음... 방상아 해설 위원은 이렇게 세련된 프로그램은 본적이 없다고 하시던데, 동의한다. 개인적인 감상을 좀 블라블라해보자면, 음악도 그렇고, 안무도 그렇고 지나치게 로맨틱하다. 보통 그렇게 되면 감정 과잉으로 흘러넘치게 마련인데, 또 한 편으로 굉장히 모던하다. 연기가 정제된 정도가 보통이 아니다. 그러니 세련되게 느껴질 수 밖에!
연아는 적어도 여자 스케이터들 중에는 가장 모던한 스케이터였다. 연아처럼 현대적인 미적감각을 표출할 줄 아는 선수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아의 연기에서는 늘 아름다움 저 속내에 지독한 냉철함이 숨어 있다. 완벽한 자기 제어가 가져오는 냉철함이. 하지만, 연아는 냉철하지만 차갑지 않다. 그녀의 연기가 냉철함을 완전히 지배해버리므로. 그래 이쯤되면 궁극이다. 연아는 피겨의 궁극을 향해 달려가는 것만 같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에서 어느 정도 그 끝을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여하간 이 프리프로그램은 시간이 지날 수록 더 많은 사람들의 이해와 사랑을 받게될 것이다.
사실 아직도 작년 시즌 곡들이 올림픽 시즌에 더 잘 어울리는 것들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그 대단한 곡, 안무, 연기로 사상 최고득점으로 월드챔피언에 오르며 얻은 소득이 너무 많다.
중요한 것 두가지는
첫째, 그녀가 여자 싱글의 원탑으로 사실상 인정받은 것이다. 이번 대회의 점수가 그것을 증명한다. 원래 피겨에서는 보통 한 번 탑으로 제대로 인정을 받으면 심판을 비록한 관계자들의 아낌없는 존중을 받는다. 그녀가 내려오지도 않겠거니와, 그 누구도 김연아 가시는 길에 생채기조차 내지 못하리라...
둘째, 김연아가 얻은 자신감이다. 연아가 절대 마인드가 약한 선수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불안한 모습을 종종 보인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번 대회를 보니 월드 이후 얻은 자신감이 장난이 아니다. 앞서서 언급했지만 동작 하나하나에서 관록이 묻어나는 거장의 손길이 느껴지는데, 이는 작년까지는 느껴보지 못했던 것이다. 기술의 레벨의 변화가 없는 상태에서 이런 것이 느껴진다면 챔피언의 위용과 자신감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그러다보니 연기에서 완숙미까지 물씬 느껴진다.
이제 마인드마저 완벽해진 연아를 상대할 다른 선수들을 생각하니 좀 심하게 안습이다.
# by | 2009/10/19 16:54 | 金姸兒 | 트랙백(1) | 덧글(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