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 올림픽 때보단.
이번 시즌 내내 피겨스케이팅은 단 한 경기도 보지 않았다. 김연아에 대한 갈증을 끌어올리기 위해. 내가 신의 물방울을 너무 탐독한 탓이리라. 젠장 왜 이런 스토리를 넣어가지곤.
만화 스토리를 떠나서 연아없는 여싱은 앙꼬없는 찐빵보다 더 맛이 없고, 나머지 쪽도 뭐 그닥 확 땡기는 인물이 없는 전반적으로 침체기는 분명 침체기였으니까.
예술과 연관된 분야에서 발레, 한국 무용, 국악은 내가 좀 아니 많이 약한 예술분야라 글쓰기가 좀 조심스럽다. 아당의 지젤은 음악적으로 와닿지 않던 것이고, 한국 음악의 사용에 대해선 너무 생각을 많이 한 선곡이 아닌가 하는 의문도 들었다. 하지만, 나의 그런 의문에 대해 언제나 기대 이상의 해답을 제시해주었던 그녀이기에 갈증은 더욱 커져갔다.
그 동안 갈증을 증폭시켜 김연아를 갈구한 보람이 있는 것일까? 점프 실수가 있다 한들 몰입도는 더 대단하다. 음악이 흐르고 김연아가 표정을 지으며 움직이는 순간부터가 감동이고 즐거움이다. 로맨티시즘이 철철 흘러나온다. 타고난 지젤라인이 요기 있넹-_-
그냥 대단하다는 말 밖에 안 나온다. 발레는 정과 동이 굉장히 명확하다. 하지만 피겨스케이팅은 계속되는 스케이팅 위에서 연기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경계를 발레처럼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이 어렵다. 그런데 김연아는 발레와 같이 정과 동을 구분해내버리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게 한다. 스텝을 보면 마치 여러 발레 동작들이 스틸컷처럼 지나가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게 된다. 이는 활주 속에서도 자세를 정확하게 집어주고 라인을 극단적으로 살린 결과이다. 거기에 타고난 라인을 아주 감미롭게 동작 속에 실어버리니까 아름다움이 몇겹에 겹쳐 나타난다. 나긋나긋, 하늘하늘하면서도 굉장히 격정적이고 시원한 그런 다양한 색깔들을 겹겹이 칠해 아주 깊이있는 색을 구현해내었다. 가만히 바라보다가 멍하니 빨려들게되는 아름다움. 트랜지션의 발레 동작들도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갔고 음악의 구현도 아주 훌륭했다. 지젤 음악이 이렇게 좋은 줄 처음 느꼈다. (역시 발레 음악은 발레를 직접 보고 평가를 해야ㅋㅋ)
첫 날 확인한 것은 김연아의 실력이 전혀 녹슬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개인적으로는 테크닉적으로나 연기력에서 진일보한 면을 느꼈다. 점프 실수가 있었지만 피겨 스케이팅에서 그런 실수는 비일비재한 일이고, 표현면에서는 대체 저게 가능했던 것인지 믿기지 않을 만큼 대단했는데, 그런 깊이있는 아름다움이 과연 테크닉없이 나올 수 있는가를 상기해보면 대답은 명백하게 'no'다. 채점이 되는 기술요소들은 이미 더 이상 올라가기 힘들만큼 높았던 상황이었고, 기타 스케이팅 스킬도 사실 압도적인 수준이었는데 거기서 더 늘은 것 같다. 다시 리플레이하면서 정말 경악하는 중이다.
다음 날은 의상보고 아주 흡족해버리는 바람에 기대치가 급상승했다. 보석으로 그린 자개와 치맛단이 김연아와 정말 잘 어울려 보였다. 그리고 이어진 우리 가락ㅋㅋ
어쩜 저렇게 서정적인지. 프로그램 전체가 굉장히 부드럽고 물흐르듯 해서 정말 시간이 어찌가는 줄 모르고 뚝딱뚝딱 해치우고 있다. 이건 지젤과는 상당히 다른다. 동작 자체의 표현에 보다 중점적이었던 지젤과는 달리 유려한 흐름을 이끌어 내고 있다. 아유 진짜 김연아는 괴물이다. 이런 걸 동시에 뚝딱 해치우다니.
한국적인 표현은 글쎄.. 내가 부끄럽게도 한국 무용과 음악에 대한 깜냥이 안 되어서 잘 모르겠다. 다만 김연아 프로그램의 공통적인 특징이 있는데 굉장히 아름다움 그 자체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작년의 겨슈인에서 그 정점을 찍지 않았나 생각했었는데 웬걸 아직 끝이 아니었다. 데이빗 윌슨이랑 김연아는 뭐랄까 피겨에서 유미주의를 구현하고 있는데, 아주 내 취향이라 흡족하다. 거기에 아직도 기대할 게 남아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동시에 이번 프로그램들은 디테일의 승리라고도 할 수 있는데, 윌슨이 워낙 꽉찬 안무로 유명한데 김연아는 이걸 이젠 아무렇지도 않게 해치워 버린다. 때문에 김연아의 타고난 신체, 압도적인 스킬로 자연스럽게 디테일을 구현해내니까 그 아름다움이 경이로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점수나 등수에 대한 분노는 가슴 한 켠에 접어두고.
김연아는 자신의 클래스를 입증했다. 피겨에서 단순히 점프 몇 개의 성공 여부로 연습량을 측정하고 선수의 마음을 읽어내는 것은 무지한 일이다. 성공했던 점프의 퀄리티는 여전히 압도적인 수준이었으며 클래스가 몇 수는 높은 점프 외의 퍼포먼스 역시 그녀의 부단한 연습의 산물일 것이다. 여러 세부적인 면에서는 진일보한 모습마저 보이고 있다. 이전 시즌에 여싱으로서 최고 수준의 퍼포먼스를 보여준 그녀가 말이다. 그런 수준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는 것은 범인이 생각하지 못할 그런 노력이 동반될 것이다. (미안하다. 사실 나도 범인이라 잘은 모르겠다.) 화제의 아리랑 싱크로 스파이럴만 봐도 그 도입부에서의 우아한 동작은 예전에 보기 힘든것이지 않나. 여전히 차원이 다른 완성도와 디테일의 아름다움을 선사하면서 더 발전된 모습까지 보여준 그녀에게 연습이 부족했다니느 동기부여가 안 되었다느니 하는 말은 하지말자. 그것은 무지에서 비롯된 욕지거리에 다름 아닐 뿐.
생각해보니 그건 칭찬일 수도 있겠다. 껍데기처럼 대충 연습해서 저런 아름다움을 표현하면 김연아는 진짜 무슨 피겨 신이라도 되는가... 신한테 그런 투정 쯤 할 수도 있겠다. 왜 신 주제에 점프는 실수하냐고ㅋㅋ
ps.
그리고 채점 문제는 웬만하면 건드리고 싶진 않지만 김연아 채점 문제 나올 때마다 너무 시선이 편향적인 거 아니냐는 의견도 꽤 많이 보이던데.... 김연아는 그 채점 문제 때문에 아주아주 잘 하던 점프 구성까지 바꾼 사람이다. 난 아직도 카메라를 바라보며 잡아먹을 듯한 무시무시한 스피드로 내달리다 휙~ 턴을 한후 시원하게 날려주던 트리플 플립 트리플 토우룹과 남들은 멀찌감치서부터 뒤를 돌아 활주해야 하는 것을 스텝 동작 이후에 아주 간소한 활주만을 한 후 태평양을 횡단하는 엄청난 비거리로 날려주던 트리플 러츠에 소름, 감동, 경악, 카타르시스를 다시 느끼고 싶다. 그런데 김연아에 대해 디스어드벤티지가 없다면 정말 어불성설이고 말고. 암..
ps2.
실전이 부족했던 건 사실이다. 내셔널 빠방한 나라는 거기서 좀 감을 찾고 오는데, 김연아는 연습도 외국에서 하니 더더욱 그런데, 우리나라 대회를 참가하긴 그렇고.. 사대륙은 권위나 이런 저런 면이 좀 떨어지고... 다음엔 사대륙이 좀 연습하는 근처에서 열림 참여하고 월드 가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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